[취재수첩] 개인 처벌만으로는 없어지지 않을 체육계 폭력

입력 2021-02-15 17:53   수정 2021-02-16 00:10

지난 설 연휴 포털 사이트에서 ‘고속도로 교통상황’보다 더 관심을 끈 것은 여자프로배구 선수 이재영·다영(흥국생명)의 ‘학폭(학교폭력) 논란’이다. 설을 앞두고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중학생 시절 함께 배구를 하던 두 사람에게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글이 올라오면서다. 당사자들이 즉각 가해 사실을 인정했지만 다른 피해자들의 추가 증언이 꼬리를 물었다. 당사자들의 배구계 퇴출을 요구하는 여론도 들끓었다.

남자배구에서도 폭로가 이어지면서 쌍둥이 자매 사건이 ‘학폭 미투’로 번지는 모양새다.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체육 분야 부조리를 근절할 특단의 노력을 기울이라”고 특별히 지시했다. 사태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얘기다.

체육계의 폭력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일부 종목만의 문제도 아니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트라이애슬론 선수 최숙현도 폭력의 피해자였다. 앞서 프로야구에선 NC 다이노스가 드래프트에서 김해고 투수 김유성을 지명했다가 학폭 논란에 휩싸이자 지명을 철회했다. 2018년 키움 히어로즈에 입단한 안우진도 50경기 출전 정지의 징계를 받았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폭로와 사과가 반복되는 체육계의 폭력 사건은 매년 데자뷔처럼 일어나지만 대통령의 지시로도 명쾌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문 대통령은 2019년 여자쇼트트랙 심석희 선수가 성폭행 피해 사실을 공개했을 때도, 지난해 최숙현 선수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때도 스포츠 인권 강화를 지시했다. 뒤늦게 스포츠윤리센터를 설립해 신고 시스템을 구축했으나 인권센터는 선수들 사이에서 ‘고발’이 아니라 ‘고자질’ 장소 정도로 여겨지고 있다. 한 체육인은 “사건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면 익명성이 보장되기 어려운데 누가 선뜻 용기를 낼지 모르겠다”고 했다.

‘국대 자매’에게 소속 구단은 무기한 출전 정지, 대한민국배구협회는 국가대표 선수 자격 무기한 박탈의 징계를 내렸다. 그러나 현장에선 폭력과 부조리로 물든 엘리트 스포츠의 구태를 청산하지 않는 한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목소리가 팽배하다.

고등학생 때까지 축구 국가대표 상비군을 지낸 직장인 A씨(33)는 “이다영·재영 사건을 유심히 지켜봤는데 이 같은 선수들은 어딜 가도 있었다”며 “선수들도 나도 못 본 체 지나갔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팀 전체가 성적 만능주의에 미쳐 있던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반 사회라면 경찰서로 갈 일이 매일 일어났습니다. 선배가 때려도 당연한 줄 알았어요. 선수들을 대학에 보내야 하는 감독님도 폭력 선수들을 나무라기보다 팀워크를 내세우며 제게 참으라고 한 걸요. 장담하건대 체육계 부조리는 절대 개인 처벌로 없어질 문화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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